Harvard 대학교 에세이 문제

너의 중요한 경험, 성취, 모험과 그것이 너에게 미친 영향을 평가해라.

앗, 안 돼, 또 은상이야!

나는 영국 레스터에서 개최된 제 31회 국제 물리올림피아드의 최종결과를 보고 이렇게 소리질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평온함을 되찾았다. 왜냐하면 이번에도 금상을 타지 못하더라도 낙담하지 않겠다고 내 자신에게 단단히 약속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내가 이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이번 시험은 국제 물리올림피아드 역사상 가장 어려웠다. 그래서 금메달 수도 적었다. 내가 이번에 거둔 18등이라는 등수는 작년(1999년)이라면 금메달을 딸 수 있었던 등수로 전혀 나쁜 결과가 아니었다. 내가 작년에도 은상을 탔고 더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이번 결과는 나의 향상을 보여준 것이었다.

이 일이 일어나기 세 달 전 다른 사람에게는 항상 의문의 여지가 없었던 문제가 나를 괴롭혔다. ‘내가 국제 물리올림피아드에 다시 나가야 하는 것일까? 내가 만약 대표선발전에서 뽑힌다면 금메달을 딸 수 있을까? 만약 금메달을 따지 못한다면 다른 애들이 뭐라고 할까? 나 때문에 서울대학교와 과기대에 특차로 진학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고? 내가 국제대회에 세 번씩 나가면서도 금메달 하나 못 타온다고? 내가 만약 금메달을 못 딴다면, 국제대회 시험준비가 시간 낭비가 아닐까?’

이런 일들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한 후, 나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는 내가 대표로 뽑히든 안 뽑히든 상관하지 않겠다. 내가 만약에 안 뽑히면 나는 내 자신을 물리 문제 푸는 기계로 만드는데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는 것이고, 내가 뽑히면 혹시 영예로운 금메달을 딸지도 모르고 더군다나 영국을 열흘 동안 공짜로 여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내 자신을 금메달을 꼭 따야 한다는 보편적 집착으로부터 분리해내기 위해서는 나의 의지가 필요했다.

작년(1999년)에 제 30회 국제 물리올림피아드에서 돌아온 후, 서울대학교의 소 교수님이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얻는 것과 나중에 성공적인 물리학자로서 연구를 잘할 수 있는 것과는 약간의 상관관계가 있을지 모르지만,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 훌륭한 물리학자가 되는 것을 보증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왜냐하면 국제대회에서의 좋은 성적은 짧은 시간에 물리 문제를 잘 풀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주었다. 그래서 교수님은 물리 공부를 위해 필요한 책들을 추천해주었고, 물론 그 책들은 국제대회를 넘어선 수준으로 국제대회에 당장 도움이 되는 책들은 아니었다. 나는 교수님 설명을 잘 이해하고 그 분의 말을 따랐다. 왜냐하면 작년에 물리올림피아드에서 만났던 미국 대표 학생들 때문에 내 생각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 애들은 시험이 끝난 후에도 높은 수준의 양자역학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물론 높은 수준의 양자역학은 시험에 절대로 나오지 않을 것이고, 나온 적도 없다. 미국 학생들은 금메달을 따려고 물리공부를 한 것이 아니라 물리를 사랑해서 공부한 것이다.

내가 뽑힐지 안 뽑힐지 상관하지 않았기에 나는 대표선발전을 위해 그다지 열심히 준비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그 동안 경험이 많았던 이유로 쉽게 뽑힐 수 있었다. 그 후 나는 내 자신의 어떠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국제대회를 준비한 것이 아니라, 국제대회에 나갈 자리를 빼았았다는 이야기를 듣기 싫어 물리를 공부했다. 이러한 태도는 나의 물리 문제 푸는 시간에 영향을 끼쳤다. 내가 아는 한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선배들은 물리 문제를 지겹도록 하루에 열 시간이 넘도록 풀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나는 그렇게까지 열심히 공부할 수는 없었다. 소 교수님이 추천한 책을 공부하는 것은 재미있어도 산더미처럼 쌓인 물리 문제를 푸는 것은 지겨웠다.

자발적인 동기가 부족했기 때문에 나는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 그 결과로 나는 물리 문제 잘 푸는 도사로 신격화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분이 전혀 나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은상밖에 못 탔다는 것이 자연을 연구하겠다는 내 꿈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