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자들에 따르면 이 세상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의 물질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보존(Boson)이고 다른 하나는 페르미온(Fermion)이다. 보존에는 빛의 알갱이인 광자나 약력을 전달하는 W 보존, Z 보존, 강력을 전달하는 글루온(gluon), 중력을 전달하는 중력자 등이 있다. 페르미온에는 전자, 뉴트리노와 쿼크 등이 있다.

보존은 보통의 숫자로 기술되며, 페르미온은 그라스만 수(Grassman number)라는 숫자로 기술된다. 보통의 숫자는 a 곱하기 b 가 b곱하기 a와 같다는 성질이 있다. 반면에 그라스만 수는 a 곱하기 b가 -b 곱하기 a와 같다는 성질이 있다. 이로부터 알 수 있는 그라스만 수의 특징은 같은 수를 두 번 곱하면 0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a 곱하기 a는 -a곱하기 a와 같다. 즉, a 곱하기 a가 0이 되어야만 한다. (0=-0)

이 사실은 아주 중요하다. 이에 대해서는 파울리의 배타원리가 뭔지 설명한 다음에 설명하겠다.

파울리는 주기율표를 설명하기 위해 파울리의 배타원리를 도입했다. 원자에는 전자들이 차지할 수 있는 여러가지 상태가 있는데 파울리에 따르면 한 상태에 두 개 이상의 전자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즉, 한 상태에 많아야 한 전자만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상태를 좌석으로, 전자를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한 좌석에는 많아야 한 사람만이 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좌석에 둘 이상 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파울리의 배타원리는 수학적으로 다음과 같이 이해될 수 있다. 전자는 페르미온이기 때문에 그라스만 숫자로 기술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그라스만 숫자 "a(n)"이 n번째 상태에 있는 전자를 기술한다고 하자. 그럼 n번째 상태에 한 전자가 있고 동시에 m번째 상태에 다른 한 전자가 있는 것은 a(n)xa(m)으로 기술되어야 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왜 이 두 숫자를 곱해줘야 하는지는 설명하기 어려울 듯싶다. 그건 그렇다 하면, n번째 상태에 있는 두 전자는 a(n) 곱하기 a(n)으로 기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 a(n)이 그라스만 숫자기 때문에, a(n) 곱하기 a(n)은 0이어야만 하다. 따라서, 두 전자는 같은 상태에 있을 수 없는 것이다. 0이라는 것은 그런 가능성이 없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셋이나 더 많은 개수의 전자들은 "a(n)xa(n)x.....xa(n)"이란 숫자로 기술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 값은 0이다 왜냐하면 a(n)xa(n)=0이고 0에다가 a(n)들을 곱한 값은 항상 0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상태에 많아 봤자 한 전자만 있을 수 있다.

다음으로, 질소의 원자핵과 중성자의 발견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그라스만 숫자를 두 개 곱한 값은 보통의 숫자처럼 행동한다. 예를 들어, a,b,c,d가 각각 그라스만 숫자라고 하자. 그럼:

(ab)(cd)=a(bc)d=a(-cb)d=-acbd=(-ac)(bd)=(ca)(-db)=c(-ad)b=c(da)b=(cd)(ab)

따라서 (ab)(cd)=(cd)(ab)이다. 이렇게 간단히 증명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그라스만 숫자를 짝수 개 곱한 것은 보통의 숫자처럼 행동하고, 그라스만 숫자를 홀수 개 곱한 것은 그라스만 숫자처럼 행동한다는 것을 쉽게 보일 수 있다.

따라서, 짝수 개의 페르미온은 보존처럼 행동하고, 홀수 개의 페르미온은 페르미온 처럼 행동한다. 역사적으로, 이 사실에 근거한 모순이 중성자의 발견으로 해결이 되었다.

중성자가 발견되기 전에는, 물리학자들은 원자핵이 양성자와 전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질소 원자핵이 14개의 양성자와 7개의 전자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질소 원자핵의 질량과 전하량으로부터 이렇게 결론을 지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모순이었다. 양성자와 전자는 모두 페르미온이고, 질소 원자핵은 21개의 페르미온으로 구성되어졌기 때문에 질소 원자핵도 페르미온이어야만 한다. (21은 홀수이다.) 그러나, 실험적으로 질소 원자핵이 보존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다. 이 모순은 중성자가 발견됨으로써 해결되었다. 질소 원자핵은 7개의 양성자와 7개의 중성자로 이루어져 있다. 즉, 14개의 페르미온으로 이루어져있으므로 질소 원자는 보존이다.

연습문제 1. a,b,c,d,e 각각을 그라스만 수라 할 때 다음 중 어느 것이 abcde와 같고 어느 것이 (-abcde)와 같을 것인가?

(a) eabcd    (b) cadbe    (c) cbade    (d) edabc    (e) aebcd

여기서 다섯 개의 그라스만 수가 서로 순서가 뒤바뀜에 주목해라. 이를 “치환(permutation)”이라하며 abcde와 같은 치환을 ``우치환(even permutation),’’ (-abcde)와 같은 치환을 ``기치환(odd permutation)’’이라 한다. 나중에 “레비-치비타 기호”글에서 우치환과 기치환을 다시 한 번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