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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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에 김두철 교수님, 이성묵 교수님, 최돈형 교수님, 신 기자님, 그리고 형들과 나는 비행기를 타고 London으로 떠났다. London에는 오후 4시 반에 도착했다. 공항을 빠져나와 숙소에 짐을 풀고 시내구경을 하였다. 한국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호텔로 돌아가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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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Heathrow 공항으로 떠났다. 공항에서 오후 2시 비행기로,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를 향해 출발했다. 이륙하기 직전 기장이 지금 레이캬비크에는 비가 내린다고 하였다. 세 시간을 날아가자 착륙한다는 안내방송이 있었다. 레이캬비크의 날씨가 맑아졌다는 방송도 나왔다. 비행기는 하강을 계속해 구름 아래로 내려갔다. 갑자기 땅이 나오고 드디어 착륙하였다.

공항밖에는 우리를 안내할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각 나라마다 아이슬란드인 가이드를 한 명씩 배치한 모양이다. 한국팀을 담당한 가이드는 이름이 Sylvia라고 하였다. 버스를 타고 호텔로 갔다. IPhO학생들은 여러 호텔에 나뉘어 묵었다. 우리가 묵은 호텔 이름은 ÍSÍ(발음은 이에스이)였다. 이에스이 호텔에는 우리 외에도 중국, 그루지야, 네덜란드, 이스라엘에서 참가한 학생들이 있었다.

Sylvia가 우리에게 여러 가지 필요한 것을 나누어주었다. 비옷, 일정표, IPhO 티셔츠, 레이캬비크 지도 등이었다. 호텔에 짐을 풀고 Sylvia와 함께 Family Park로 향했다. Family ParkLaugardalur에 있는데 호텔 중에서 유일하게 이에스이 호텔만 Laugardalur에 있었다. Laugardalur는 여러 시설이 잘 구비되어 있었다. 수영장, 축구장, 레저룸 등등...

IPhO학생에게는 Family Park는 물론 Laugardalur의 여러 시설이 공짜였다. 거기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 때 비가 약간 내렸다. 소시지와 양고기, 감자 같은 것을 먹고 10시 정도까지 놀다가 호텔 바로 옆에 있는 Laugardalshöll에서 슬로바키아 아이들과 함께 탁구를 했다.

호텔로 돌아왔다. 중국 아이 3명에게 동성이 형과 함께 한국 카드게임 마이티를 가르쳐 주면서 같이 놀았다. 밖이 아직도 환하여 커튼을 쳤다. 11시 반쯤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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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에는 교수님들을 만나지 못한다. 왜냐하면 교수님들은 문제를 상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버스로 Háskólabíó로 떠났다. 거기서 개회식을 했다. 개회식을 기다리는데 어떤 아이가 우리에게 다가와 ‘안녕’이라고 한국말로 인사를 했다. 이름표를 보니 <Sungsoo Ko, New Zealand>라고 쓰여져 있었다. 3년 전에 이민갔다고 하였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개회식에서는 아이슬란드 노래공연 등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많이 있었다.

개회식을 끝낸 다음 시청으로 갔다. 소시지와 샌드위치로 점심식사를 마치고 시내구경을 나섰다. 물가가 아주 비쌌다. 전반적으로 한국의 4-5배쯤 되는 것 같았다. 시내구경을 마치고 Laugardalur에 있는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Laugardarshöll에서 저녁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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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ugardarshöll에서 시험을 봤다. 내 수험번호는 KOR05였다. 내 옆에는 영국 아이와 아일랜드 아이가 앉았다. 아일랜드 아이는 북아일랜드에서 왔지만 아일랜드 대표로 나왔다고 하였다. 호루라기를 불자 가이드가 문제지와 종이를 가지고 왔다. 시험 시간이 길다보니 중간에는 간식도 나눠준다. 샌드위치와 주스가 나왔다.

1번 시험문제는 정육각기둥(연필이라 생각해도 좋다)이 기울어진 면에서 굴러가는 문제로 간단한 것인데 잘 풀지 못하였다. 2번 문제는 아이스 캡에 관한 문제인데 개최지가 아이슬란드라서 나온 문제 같았다. 간단한 문제였지만 거의 못 풀었다. 3번 문제는 행성의 속도가 빛의 속도보다 더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에 관한 문제였는데 이 문제는 자신 있게 풀었다. 시험이 끝나고 옆에 아일랜드 애가 말하길 자기는 한 문제도 제대로 못 풀었다고 한다. 그 아이 답안지를 보니 거의 백지에 가까웠다. 형빈이 형은 시험을 잘 본 것 같았고 나머지 형들은 20점도 안 된다고들 말하였다.

Pizza Hut에서 점심을 먹고 수력발전소 관광을 하였다. 러시아 아이가 중국 아이에게 시험을 어떻게 봤느냐고 물어보았다. 중국아이는 영어를 잘 모른다고만 대답했다.

저녁은 아이슬란드 가정에서 먹었다. 호텔에서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차를 태워 그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 집으로 가는 도중 처음으로 아이슬란드에서 해를 보았다. 도착한 다음 하늘이 늘 흐려 해를 못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차안이라 그런지 아이슬란드에서 처음으로 덥다고 느꼈다. 사실 덥다고 하기보다 약간 따뜻한 날씨였는데 말이다. 차에서 내려보니 바람이 많이 불어 춥게도 느껴졌고 또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곳에서는 덥기도 했다. 아무튼 이상한 날씨였다.

우리를 초대한 집에는 딸과 그 딸의 친구가 있었는데 나이는 만 16세라고 하였다. 주인 아저씨는 지구물리학자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독일 괴팅겐 대학교를 나왔다고 자랑하였다. 괴팅겐 대학교는 가우스, 플랑크, 하이젠베르크, 그리고 자신을 비롯한 많은 훌륭한 사람들을 배출했다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저녁식사를 했다. 양배추, 감자, 양고기, 아이스크림 등이 나왔다. 식사 후 아이스 캡에 관한 비디오를 보여 주었다. 어제 보여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조금 있다 그 집의 큰딸이 왔다. 그 큰딸은 이십 몇 년 전 한국에서 입양됐다고 한다. 입양 당시는 6개월이었고 이름이 만희였다고 하였다. 지금은 슈퍼마켓에서 일하는데 아주 지루하다고 한다. 다 함께 차를 타고 바닷가로 가서 시간을 보내다가 호텔로 돌아왔다. 12시쯤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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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먹고 버스를 타고 전망대로 갔다. 전망대에서 바닷가로 가는 중간에 샌드위치, 음료수, 사과, 초콜릿 등을 먹었다. 바닷가에서 배를 탔다. 3명이 노를 저어 가는 거라 힘의 균형이 안 맞아 배가 자꾸 회전을 하였다. 빈배가 있기에 혼자 1인승을 타다 배가 뒤집혔다. 다행히 구명조끼를 입었고 구조를 신속히 해주어 살아날 수 있었다.

나는 Laugardalur로 돌아왔고 형들과 Sylvia는 박물관 구경을 갔다. 나는 아이슬란드 아이들과 축구를 하였다. 나중에는 포르투갈 아이와 이란 아이들도 참여해서 다 함께 축구를 하였다. Laugardarshöll에서 저녁을 먹고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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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시험을 보는 날이다. 실험기구가 많지 않은 관계로 두 그룹으로 나뉘어 시험을 봤다. 우리 호텔에 묵었던 참가자들은 <그룹 2>에 속해 오후에 시험을 보았다.

오전에는 알루미늄 공장을 견학했다. 알루미늄을 생산하는데는 막강한 전류가 필요하다고 한다. 전류가 흐르면 자기장이 발생하므로 그 안에는 자기장을 받으면 안 되는 물건은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안내원이 클립을 가지고 들어가 클립이 서로 붙는 것을 보여 주었다. 신기하였다. 그 공장에서 생선과 샐러드, 수프 등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오후 1시 반쯤에 Laugardarshöll에 도착했다.

오후 2시부터 5시간 동안 시험을 봤다. 코일, 변압기에 관한 문제였다. Part 1에서 측정하는데 시간을 너무 소요해서 Part 2를 조금밖에 하지 못했다. 시험을 망쳤다.

저녁식사 시간에 교수님들과 기자님을 만났다. 교수님들은 이론시험 문제를 아침 7시까지 번역했다고 했다(이론 시험은 8시부터였다). 교수님들이 성적을 정확하게 말해주지 않았다.

"저 이론 어떻게 봤어요?"

"반은 맞았어."

"다른 형들은요?"

"형빈이는 거의 다 맞았고 다른 애들은 비슷비슷해."

저녁을 먹고 디스코텍에 갔다. 디스코텍에 간 이유는 그 날 일정이 그렇게 짜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가든 안 가든 자유이긴 하지만 형들이 가서 나도 따라갔다. 별로 춤 출 기분은 아니어서 싱가포르 아이들과 싱가포르식 브릿지를 했다. 나중에는 내가 마이티를 가르쳐주고 함께 마이티를 했다.

12시쯤 호텔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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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식사 후 버스를 탔다. 우리 버스에 탄 가이드가 영어와 에스파냐어로 설명을 해 주었다. 내 옆자리에는 수리남 아이가 앉았다. 멕시코, 아르헨티나 쪽 아이들이 자기 나라 말로 계속 노래를 불렀다. 가는 도중 물이 부글부글 끓는 곳을 구경하였다. 물에서는 달걀 썩는 냄새가 났다(아이슬란드에서는 뜨거운 수돗물에서 달걀 썩는 냄새가 난다).

중간에 또 어느 폭포도 구경하였다. 휴게소에서 버스가 멈추고 버스 안에서 샌드위치, 음료수, 초콜릿, 사과를 먹었다. 물론 전에 먹던 것과 똑같은 거였다. 버스는 계속 달려가서 빙하에 도착했다. 수리남 아이는 눈을 처음 본다고 하였다. TV에서만 보았다고 한다. 눈 속을 움직이는 이상하게 생긴 버스 같은 것을 타고 어디선가 내려서 눈싸움을 하고 다시 돌아왔다. 빙하를 떠나 버스는 계속 달렸다. 버스 안에서 가이드들이 아이슬란드 노래를 불렀다.

버스는 유럽 판과 아메리카 판이 만나는 곳에 도착했다. 1년에 2cm씩 멀어진다고 한다. 절벽처럼 생긴 단층 같은 것이 보였다. 그 옆에 작은 냇가가 있었는데 거기다 동전을 던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냇가 아래를 보니 동전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나도 동전을 하나 던졌다. 다시 버스를 타고 가는데 가이드가 저기 있는 것이 아이슬란드에서 제일 높은 건물인데 78m라고 하였다. 사실 아이슬란드에서 높은 건물을 본 적이 없다. 6차선 이상 도로도 본 적이 없다. 차가 별로 없어서 도로에서는 자유롭게 무단횡단이 가능했다.

Laugardarshöll에 도착해서 형들과 나, 교수님들, 기자님은 한국 명예대사관 집으로 갔다. 그 명예대사관 집에 도착하니 태극기가 게양되어 있었다. 아이슬란드에서 현대차를 파는 일을 하는데 3천대를 팔았다고 한다. 아이슬란드의 차들 중 10%한국차라고 한다. 사실 내가 묵었던 호텔 방에서도 창문 밖으로 <HYUNDAI>라고 간판을 단 건물이 보였다.

그 집에서 저녁을 먹고 집 구경을 하였다. 그 집에는 온갖 수집품이 다 있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티셔츠를 선물로 주었고 택시를 태워주었다. 그런데 택시비가 상당히 비쌌다. 100m 정도를 가면 10크로네(200원정도)가 올라갔다. 20분쯤 탄 것 같은데 1420크로네가 나왔다. 5명이 넉넉히 타는 큰 택시이긴 했지만 너무 비쌌다. 돈은 그 사람이 내는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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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식사 후 빈둥빈둥 놀다가 점심은 Pítan이라는 패스트푸드점에서 먹었다. Laugardarshöll로 돌아와 버스를 타고 어느 연구소에 도착해 생물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너무 재미없었다. 후회됐다. 재미있는 다른 관광도 많았었는데 형들 따라가다가 망했다. 정말이지 너무 지루해서 잠이 쏟아졌다. 결국 자고 말았다. 나중에 깨어 있던 사람이 이야기하기를 거기 있던 대부분의 사람이 잤고, 깨어있던 사람들도 강의를 듣지 않았다고 한다.

강의가 끝나고 oz라는 회사의 가상현실을 구경했다. 저녁식사는 아이슬란드에서 단 하나뿐이라는 한국식당에서 했다. 교수님들, 기자님, 형들과 같이 먹었다. 물론 아주 맛있었다. 식당 주인이 말하기를 아이슬란드에 한국사람은 자기 가족 다섯 명만 산다고 한다. 22년 전에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다 좋아서 아예 이민 왔다고 하는데 그 말에 공감이 갔다.

저녁을 먹고 돌아와 Laugardarshöll에서 <The Fight Between Ice and Fire>라는 제목의 강의를 들었다. 강의가 끝나고 시험결과를 기다렸다. 이스라엘 교수가 3등이 한국사람이라는 좋은 소식을 알려주었다. 서로 사진을 찍고 다른 호텔에 놀러갔다. 다른 호텔에서 어떤 아이가 최종결과를 가지고 있어서 그것을 보았다. 여러 호텔을 돌아다니다 3시쯤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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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lvia와 형들은 쇼핑을 갔다. 교수님들과 기자님, 나는 수영을 했다. 수영 후 'Ning'이라는 중국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Háskólabíó로 가서 폐회식을 했다. 다시 호텔로 돌아와서 다른 버스를 타고 오랫동안 달려가서 어느 근사한 호텔에서 저녁을 먹었다.

장기자랑 비슷한 시간이 있었는데 이탈리아 아이들이 대단한 음치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불러 많은 박수를 받았다. 캐나다 아이들은 선글라스를 끼고 팝송을 불렀다. 인도 아이가 바이올린으로 전통 노래를 연주했고 ‘소련’에서 온 아이들은 재미있는 춤과 노래를 공연했다. ‘소련’에서 온 한 아이가 말하기를 더 이상 ‘소련’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나 자기네는 모두 ‘소련’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부르는 노래는 정치와 관련 없는 노래라고 했다. 나중에 '소련' 아이에게 물어보니 그들이 불렀던 노래가 '소련' 국가(國歌)라고 하였다. 디스코 파티가 있었고 파티가 끝난 다음 호텔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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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에 일어나 짐을 챙기고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나갔다.

Sylvia가 마중 나왔다. 750분에 아이슬란드를 이륙했다. 창 밖을 보았다. 아이슬란드의 풍경이 서서히 멀어지다가 완전히 안 보일 때까지 내려다보았다. 아쉬웠다. 아이슬란드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는 못 봤지만 형들은 <조선 국립과학영화제작소>에서 만든, ‘영리한 동무들이 잘 논다’는 내용의 만화영화를 보았다고 하였다. 노래는 한국말로 나오지만 대사는 아이슬란드 말로 나온다고 했다. 그리고 형들은 <은비와 까비>라는 만화영화도 보았다고 하였다.

영국에 도착하여 비행기에 동승했던 아이들과 작별인사를 나눴다. 호주 아이가 티셔츠를 주었다. 지하철을 타고 과학박물관에 가서 구경을 했다. 과학박물관에 있는 책방에서 IPhO에 참가했던 태국 아이들을 우연히 만났다. 그 아이들은 영국에 3일 정도 더 있다 간다고 하였다. 공원에서 산책한 후 중국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10시에 김포공항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비행기 안에서 뉴스를 봤다. 우리 나라와 러시아 사이에 있었던 외교분쟁에 관한 내용이었다. 아이슬란드에서 친하게 지내던 러시아 아이가 생각났다. 만약 저 뉴스를 아이슬란드에서 들었더라면 그 아이와 그렇게 친하게 지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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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 반에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는 부모님들과 한국물리학회 회원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한국물리학회에서 우리 모두에게 꽃다발을 주었다. 그리고 ‘IPhO환영’이라는 작은 깃발을 내놓았다.

집에 돌아오니 아이슬란드와 거기서 만났던 사람들이 그리웠다. 내년에는 더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야겠다.

(참고 : 29회 국제물리올림피아드 인터넷 웹사이트 주소

http://www.hi.is/ipho/ )